일단 확실한 건 한 번 독해로 끝날 이야기는 아니란 겁니다.
이 소설은 스스로 돈을 벌지 못하는 주인공의 무기력함과 혼란스러움을 표현합니다. 주인공은 아내로부터 은화와 밥을 받으며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소설이 진행되며 주인공은 아내의 화로 인해 집에서 쫓겨나고, 결말에서 주인공이 정오의 거리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날개를 꿈꾸는 모습에서 끝이 나죠.
글을 읽으며 요소 하나하나를 해석하려하기 보단, 그냥 이야기가 제시하는 대로 세상을 그려보며 읽어보았습니다. 일제시대, 실존주의 등 다양한 배경이 있다고 들었지만, 그냥 일단 다 제쳐놓고 공감의 자세로 책을 읽어본 거죠.
그런 자세로 읽으면 이 소설은 꽤 쉬웠습니다. 제 모습과 유난히 비슷한 것 같거든요.
주인공만큼 무기력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저한텐 충분한 미래가 있는 것 같고, 다양한 꿈과 이루고픈 것들이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돈을 벌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 게으릅니다. 돈을 버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도 해요. 저의 그런 면은 가끔 많은 것을 쉽게 포기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죠.
요즘 좀 많이 힘든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친구와는 비슷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왜 그가 집의 한 좁은 방에 갇힌 듯이 생활해야 했는지, 왜 별 이유 없이 카페(티이루움)에 앉아서는 주위 사람들과 거리, 메뉴판을 뚫어져라 보는지. 왜 외출을 그리도 좋아했는지, 왜 돈을 남에게 건네는 것을 즐겨했는지,
다 이해가 어느 정도 돼는 것 같습니다.
사실 다 제가 해본 행동들이니까요.
오늘 글을 읽고 바로 이 리뷰? 독후감?을 쓰는데요, 사실 오늘 처음 읽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 글도, 심지어 이 작가(이상)도 오래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이 분의 『권태』라는 소설을 읽고 처음 느껴본 공감을 느낀 것 같았거든요. "그래! 농촌이 도대체 뭐가 좋다고 그러는 건데?" 하면서요.
그래서 21살 때 이 소설을 한 세 번 정도 완독을 했습니다. 왜냐면 그 시절 제 피폐했던 삶을 대변해 주고 이해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한때 거리의 차량진입방지봉에 걸터앉아 이 글을 읽었던 날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하루는 어둑해져 남색 공기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저를 강 위로 솟아오른 바위 보듯이 바라보곤 스쳐 흘러지나갔죠. 그 속에서 저는 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거지? 분명 만족할 수 있는 삶인데, 왜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이렇게 회피하고 게으른 삶을 살지? 하며, 소리없이 마음만으로 한탄하곤 했습니다.
그 글에서 제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그것 만으로 기뻤습니다. 저도 제 마음을 알 수 없었기에, 알 수 없는 이상의 언어는, 오히려 제 모습 같았습니다. 제가 그 글을 이해했느냐 아니냐는 뒷전이였죠.
참 애석한 만큼 아름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이 소설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인터넷에서 빠르게 찾아보았는데요, 역시나 주인공에게 그냥 공감해주는 감상문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이 글이 아무래도 깊게 파면 팔 수록 더 가치가 생기는 글이기도 하고, 이상의 이야기와, 이 글이 쓰여진 배경이 흥미로울 수 있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자서전인 것도 지금 알았네요.) 하지만 이 글에 자신을 비추어 보았다는 말을 찾기 힘든 건, 절 조금 슬프게 합니다. 전문 비평가들의 말은 또 다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길 포기하는 게, 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냥,
내가 지금 같은 곳에 있어.
내가 너와 같은 마음이야.
너의 지금 그 모습을 나도 가진 적이 있었어.
너의 말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지만.
이런 말이, 더 위로가 될 때가 있다는 거죠.
아님, 뭐, 제가 아직 문해력이 한참 뒤떨어진 거일 수도 있구요, 그게 더 명확한 결론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