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유없이 힘없고 피로해하는 내 몸이 원망스럽다. 생각해 보면, 오늘은 운동도 했는데, 왜 이리 피로해하나? 잠을 잘못 잤나? 가치없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무의식이 지쳐버렸나. 뭐, 지나간 시간은 지나간거고 피곤한 몸은 피곤한 거라 치면 사실 더 중요한 고민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내 몸이 피곤하다고 해서 내 일을 그만두어버리는 내 행동이 옳나? 하지만 프로그래밍이라는 업 특성상 피곤한 상태로 코드를 쓰면 악영향이 올수 있지 않나? 하지만 써놓고 나중에 확인하면 되지! 그럼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나?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 하지만 이렇게 게으름에 대해 한탄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별로 게으를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이것도 자만이면 어쩌지? 도대체 이런 질문의 답은 혼자서 어떻게 애초에 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다. 너는 게을러 너는 게으르지 않아 이 두 문장 중 객관적인 문장이 하나라도 있나. 결국엔 내 시선에 달린 문제다. 내가 나 자신을 게으르게 보지 않으면 난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시각은 자칫 나를 -- 남의 시선에서 볼 때 -- 게으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결국 나의 잣대가 얼마나 견고한지에 따른 걸지도 모른다. 게으름이 1인 내가 있고 게으름이 10인 내가 있습니다. . 제 게으름의 '잣대'는 5입니다. 5보다 낮으면 게으르지 않고 5보다 높으면 게으른 것입니다. . 5라는 기준은 누구 밭에서 뽑아다가 쓰는 거냐고 물을 수 있지만, 믿어주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 한 때 어렷던 저는 7이라는 '잣대'를 쥐고 살아왔지만, 사람들은 제가 너무 게으르다고 욕했고, 저는 '잣대'를 3으로 바꾸어야겠다 생각하고 실천했습니다. . 하지만 그러자 세상의 요구가 저를 온전히 짓밟기 시작했고, 저는 말라 비틀어져갔습니다. 사람들의 걱정 아래, 저는 '잣대'를 8으로 맞추어야겠다 생각하고 실천했습니다. . 하지만 그러자 세상이 무미건조해지고, 즐거움을 찾을 노력하지않는 제 모습이 강물에 비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잣대'를 4로 다시 바꾸곤 했습니다. . 그러다 다시 바꾸고, 그러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그러다, 다시 마음을 바꾸고 겸허히 변화를 받아들여왔습니다. . 오 __이여, 그대는 나보다 나이가 1억천이나 많지만 그대 또한 육만일의 경험과, 그 속의 무한한 순간들을 무시할 수 없으리. . 그 속에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받아들이고, 판단하여 얻은 나의 게으름에 대한 '잣대'가 5였을 뿐. . 다른 이라면 이렇게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금전 한푼 없이 하루종일 성찰만 하고 살아온 사람이니까! . 당신의 눈은 무한하기에 당신또한 이를 아리라 믿습니다! . 저의 '잣대'엔 근거가 있습니다... __이여! 하고 말이다. 몸이 무겁다. 오늘 코딩을 더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피아노는 똑바로 칠 수나 있으려나. 그래 집에 더 있기가 싫다. 라면 빠르게 치워 먹고 나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