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우리는 같은 강물 속에 들어가는 동시에 들어가지 않는다." 버트란드 럿셀은 자신의 저서 <서양철학사상사 (하)>에서 이에 대해 "내가 오늘 테임즈강에 들어가고, 내일도 들어간다면, **내가 들어가는 강은 같지만 물은 같지 않다.**"라는 명쾌한 해셕을 주었다. 이 말은, 예전에도 '다툼과 변화가 이 세상의 전부를 우리는 규칙이다'라 주장하는 철학자가 있었지만(아낙시만드로스), 헬라클레이토스는 이 변화(강물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화된 것이 동일한(강은 여전히 있다) 이유를 제시한 점에서 새롭고 신박한 것이란 뜻이다. 바로 '규율'이라는 개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강이 흐를 골이 있고, 강을 이룰 물이 있기에, 강은 존재한다. 그것이 강의 규율이라 할 수 있겠다. 골의 모습은 항상 변한다. 물의 양도 항상 변한다. 흐르는 물도 매일 바뀐다. 하지만 규율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강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강물은 변한다는 것이 아이러니고 유머인 것이다. 슬픈 날도 있고, 기쁜 날도 있다. 실망스런 날도 있고, 보람찬 날도 있다. 몇 개월간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꾸준히 해온 내 자신이 고마운 날도 있다. 필통과 좋아하는 책을 강의실에 두고와 어제의 내가 너무 미운 날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날'이라는 규율 안에서 흐르고 변하는 수많은 순간들 뿐인거지. '날'들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해도, 결국엔 '날'이라는 규율 안에서 정규분포를 그릴 것이기 때문에, 안 좋은 날 이후엔 좋은 날이 올거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이전에 내가 적었던, "문제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거란 신뢰가 삶의 의미를 만든다"라는 주장과 연관된다. 헬라클레이토스의 말은, 그래봤자 외딴 지역의 꽤나 똑똑하다는 외딴 사람의 말이라, 그 사람의 말이 *위로*가 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내겐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증거'들이 기억 속에 있다. 헬라클레이토스의 말은 그것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불 뿐이다. 아무리 눈 앞에 강이 있더래도, 강이 더 이상 흐르지 않을까봐 걱정할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만일 강이 메마른 것을 자주 경험했고, 그것 때문에 고통받았다면, 충분히 걱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강물이 마치 내 고향의 태화강처럼 세차게 흘르며 버텨왔다면, 난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강은 있다고, 그리고 강은 있을 거라고. 내일은 또 괜찮아 질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