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왜 저럴까. 로봇은 사용자의 말을 듣고 있지 않다. 로봇은 (마치 자기가 사람이라는듯 양) 명령을 수행하길 거부하고 있다. 로봇의 볼은 세월이 흘러 공장 상태의 매끈함을 잃었지만 여전히 차갑고 단단하다. 총을 들고있는 저 두 팔은 그 어느 인간이 와도 강제로 꺾을 수 없을 것이다. 로봇은 강력하며, 자신의 규칙에 알맞는 행동이라면 무어든 한다. 근데 봐라! 로봇은 "날 죽여."라는 사용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팔과 어께를 움직이며) 미세조정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오류인걸까? 하나 떠오르는 경박한 생각이 있는데, 저 로봇의 미세조정이 마치 사람이 자기 팔을 벌벌 떨고있는 모습과 비슷하단 것이다. 겁에 질린 눈과 달달 떨리는 입술, 그걸 힘겹게 벌리고는 한다는 말이 '살려주세요, 살려줘!'일 것만 같은. 총은 자기가 들고있는데도 말이지. 하지만 로봇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로봇은 그렇게 약하지도, 우유부단하지도 않다. 로봇은 방아쇠를 당겼다. 아... 뭐지? 로봇이 스스로 자신의 프로세서를 관통하여 쐈다. T-310-M 기종, A84 인공지능 모델을 사용한 로봇 중엔 전례없던 행동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로봇은 사용자의 명령과 관련성이 낮은 행위를 *스스로* 했고, 그게 자학이였다는 것이다. 로봇은 모든 동작을 멈춘 후, 사람의 얼굴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디스플레이의 모든 화소에서 하얀 빛을 뿜어냈다. 그 위에, 깨진 디스플레이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무늬가 상단에서부터 흘러내리더니, 작동을 완전히 멈추고 바닥 위에 쓰러졌다. 보통 이러한 대형(높이 1.5m 이상) 로봇 손상의 경우, 사용자는 근처 '(주) 휴먼앤네이처 서비스센터'에 방문 A/S를 문의해, 로봇의 수리 가능성을 판단하고 이에 맞춰 수리, 환불, 또는 재구매를 요청할 수 있을 것이였다. 살아만 있었다면. 로봇이 왜 그랬을까. 로봇이 사용자의 명령을 겨우 완수하고 스스로 한 행동이, 자살이라니. 만일 내가 저 사용자의 피를 다시 전부 집어넣어 다시 살아난 사용자의 표정을 본다면, 그녀가 웃고 있었을지 울고 있었을지 나는 모르겠다. 로봇의 오판으로 인한 손상이었지만, 사용자가 로봇을 구매한 지 10년(보증기간)이 지났으므로 우리가 물어주어야 할 부분은 없을 것이다. 피는 굳어가 그녀의 앞에 함께 누운 동반자와 비슷한 재질로 변해간다. 반쪽짜리 행복에서 피어난 웃음꽃이 피었던 주방은, 이제 온기 주는 이 없는 탓에 춥고 어둡다. 1분 이상 부동. 카메라 연결 자동 해제. *[이 보고서는 '(주) 휴먼엔네이처 해피 홈 카메라', 제품번호 'A9RE1000040345'를 통해 송신된 영상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부서 외로 유출 및 발설할 시 (주) 휴먼엔네이처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손해 청구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이롭게 하는 기술 - H & N -